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약 60Km, 자동차로 약 1시간30분 가량을 달리면 인구 약 1,500여명의 작은 시골마을 바르비종(Barbizon)을 만날 수 있다. 182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까지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 근처의 이 조그마한 마을로 야생 그대로의 퐁텐블로 숲과 그 주변의 시골풍경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화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이 바로 바르비종 화파(Barbizon School)이다.

바르비종派의 시작을 연 화가는 테오도르 루소(Theodore Rousseau, 1812~1867년)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73년) 같은 동시대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동경했던 그는 원시적이며 장엄한 자연의 풍광이 잘 살아있는 쥐라 산맥과 오베르뉴, 퐁텐블로 숲 등을 여행하며 수많은 풍경화를 그렸지만, 당시만 해도 프랑스 화단에서 풍경화는 그저 저급한 장르의 하나로 취급당할 뿐이었다. 그는 1831년부터 살롱전의 문을 두드렸지만 살롱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1837년부터는 아예 출품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 이후 그는 1847년 퐁텐블로 숲 가까운 바르비종에 작업실을 마련했고, 본격적으로 풍경화를 그리며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아르본의 일몰, Sunset near Arbonne>과 <몽마르트르 평원의 전경, View of the Plain of Montmartre> 등이 있다.
그의 화풍은 자연의 형상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사실주의보다 자연의 정취와 분위기를 중시하는 자연주의에 가깝다. 그는 파리 살롱의 보수적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기 시작한 1849년에 화단으로 복귀했고, 특유의 서정적인 풍경화는 큰 명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1852년에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수훈자로 선정되기도 한다.

또 한 사람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로는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년)가 있다. 그는 스스로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의 고단하고 열악한 일상을 관찰자적 시각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노르망디에서 성장한 그는 1837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파리로 가서 이폴리트 들라로슈(Hippolyte Delaroche, 1797~1856년)의 제자가 된다. 그후 1848년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들>이란 작품으로 살롱에 데뷰를 하게 되지만,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그림을 팔지 못해 항상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다 그는 1849년 파리에 창궐한 콜레라를 피해 가족과 함께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에서 만난 테오드르 루소를 만나 함께 바르비종 화파를 이끌어가게 된다.
테오드르 루소가 퐁텐블로의 원시림과 꾸밈없는 자연 그리고 바르비종의 소박한 시골풍경을 주로 화폭에 옮긴 반면, 밀레는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쏟은 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당시 보수 우파들로부터 '계층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사회비판적인 철학을 가진 화가이긴 했지만 스스로 사회주의 같은 정치에는 관심을 가진적이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밀레의 <만종, The Angelus>는 토머스 G. 애플턴이란 미국인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그린 그림인데, 처음에는 '감자의 수확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을 붙였다가 후에 '만종'으로 바꿨다고 알려진다. 후에 이 작품은 한 가지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림에 엑스레이를 비춰보면 그림 속 감자 바구니가 원래는 죽은 아이를 넣어놓은 관이었으며, 두 부부의 기도가 감자의 수확이 아니라 아이의 죽음에 대한 기도였다는 얘기이다. 훗날 살바도르 달리는 이런 분석결과를 근거로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비극적인 신화'라는 글을 따로 남기기도 했다.
여느 자연주의 화가들처럼 밀레도 생전에는 그렇게 인기있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림도 비싸게 팔리는 편이 아니어서 밀레의 가족은 항상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의 유일한 후원자였으며 프랑스 정부의 예술최고책임관을 역임했던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밀레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어쩌면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알프레드 상시에는 밀레의 후원자이자 평생 친구로서 밀레가 죽고난 뒤, 그가 평가절하된 것에 안타까워하며 그의 작품에 담긴 예술적 성과와 인간 밀레의 순수한 영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밀레에 관한 책을 쓰게 된다. 저자는 밀레에게서 전해들은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일기, 그리고 밀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바탕으로 그를 회고한다. 이 책에는 밀레의 작품들 중,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작품과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른 개의 그림을 선별해서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바르비종에 가면 루소와 밀레, 그리고 코로, 뒤프레 등 바르비종 화파들이 머물렀던 여인숙을 개조한 바르비종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2층으로 되어있는 이 미술관의 1층은 당시의 여인숙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고, 2층에는 당시 여인숙에 머물렀던 여러 화가들의 낙서와 그림등을 전시해 놓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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