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끼요에는 일본 17~20세기초 에도시대에 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동물 등을 그린 풍속화를 말한다. 초기에는 육필화가 대부분이었으나, 18세기에 '스즈키 하루노부(鈴木 春信)'가 비단에 여러색상을 입히는 다색 판화기법 '니시키에(錦絵)'를발명하면서부터는 거의 대부분 목판화로 제작되었다.
우끼요에가 멀리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전달되어 영감을 준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1865년 인상파 화가인 '브라크몽'이 만국박람회를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도자기를 포장했던 호쿠사이의 만화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이를 주위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소개하고 전파하게 되는데, 이 우끼요에 판화를 접한 화가들이 몇 가지 중요한 영감을 받게 된다.
① 화면의 중심이 꼭 인물일 필요가 없다
② 사물을 명암 구분이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③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을 화명에 모두 담을 이유도 없다

결과적으로 우끼요에 판화는 당시 프랑스 판화에 큰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우끼요에의 요소들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기도 했는데, 모네의 경우는 자신의 집을 일본식 미술품으로 가득 채워넣기도 했고, 정원에는 일본식 다리를 놓을 정도로 일본 취미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고흐의 경우는 '탕기 할아버지'라는 작품에 배경으로 우끼요에를 그려넣기도 했고, 마네는 <에밀졸라의 초상> 속에 우끼요에를 그려넣기도 했으며, 그의 유명한 그림 '피리부는 소년'도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에드가 드가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일본을 연상시키는 소재를 그리거나 일본 미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우끼요에에서 차용한 모티프를 교묘하게 활용한 흔적이 그의 작품들 속에 여기저기 녹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자점에서> 같은 작품을 보면, 뒤의 인물을 칸막이로 반쯤 가리고 있는데, 이는 칸막이를 배치하여 화면에 변화를 주었던 우끼요에 판화들에서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인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을 대부분 우끼요에에 대한 것이었고, 비숫한 시기의 일본미술인 수묵화나 불교미술품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우끼요에 판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한 장식성과 서양미술의 원근법에 기반한 우끼요에 화가들 나름의 선택적 원근법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1893년 파리의 어느 화랑에서 열린 우끼요에 전시회에서 '카미유 피사로'는 '히로시게는 뛰어난 인상주의 화가다'라는 극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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