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모더니즘을 이끈 미술사조들 ① Realism과 인상주의

그림 읽어주는 남자 2025. 9. 27. 11:13
뉴욕 초대 현대미술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가 정리한 모더니즘 연대표

 
시기적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등장, 예술,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과 권위에 반발하며 혁신과 실험을 추구했던 사조를 우리는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부른다.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은 그저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재현'적 작업에 불과했다면, '모더니즘'은 '미술의 공통된 본질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추상적 작업이 진행된 시기였다. 이는 아마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술이 도저히 사진을 따라잡을 수 없는 한계 속에서 미술가들이 나름대로의 존재 정당성을 찾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미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가는 여정이었다. 
 
모더니즘의 문을 연 사조는 사실주의(Realism)이었다. 사실주의는 일반적으로 관념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주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종종 사실주의는 자연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두 용어가 동의어는 아니다. 자연주의는 가능한 한 왜곡을 최소화하여 대상을 묘사하고자 한 반면, 사실주의는 '사실'을 그린다기 보다는 '의미부여'를 배제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같다.
 

쿠르베의 사실주의 대표작 <돌 깨는 사람들, 1849년>

 
사실주의 미술의 대표적 작가는 구스타프 쿠르베(1819~1887년)이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19세기 프랑스 회화의 사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데 전념한 그는 학문적 관습과 낭만주의를 거부하고 그만의 독립적인 작품활동을 펼침으로써 후대 인상주의나 입체파 화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종교적 또는 역사적 주제의 그림에 주로 사용되던 웅장한 스케일로 이상화되지 않은 농민과 노동자를 묘사함으로써 관습에 과감히 도전했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정치활동에도 적극 참여, 1871년에는 코뮌에 연루되어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으며, 187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역 4년동안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그의 사상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이 바로 그가 1849년에 완성한 <돌 깨는 사람들>이란 그림이다. 현재 이 그림은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의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사조는 바로 인상주의이다. 인상주의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사회 모습을 담아내려한 화파로서, 대략 1863년과 1890년 사이에 일어난 사조이다. 그리고 그 인상주의 운동을 이끈 인물은 바로 마네이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1863년>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마네는 국가 주최의 권위적인 전시와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화가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6년을 공부하면서 매우 고전적인 미술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통을 고수하는 살롱전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당시 그와 친했던 드가, 모네, 르누아르 등은 주로 역사화, 신화화, 종교화 등 교육적인 주제의 작품들을 선호했던 살롱전의 보수성에 반대하며 그들 나름의 전시회인 '인상주의전'을 따로 개최했지만, 마네 만큼은 합류를 거부한채 살롱전 출품을 고수했다.
 
하지만 살롱전 주최측의 편파적인 심사에 대한 지탄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나폴레옹 3세는 낙선작의 별도 전시회를 허락했고, 마네의 작품 <풀밭위의 점심>이 출품의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품과 함께 수많은 이들의 조롱을 받기도 한다. 과거 역사나 신화와 같은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평범한 도시인들이 소풍나온 장면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평가가 넘쳐났고, 붓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표현방식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독창적 화풍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된다. 
 

마네의 <올랭피아, 1863년>, 오르세 미술관

 
전통적이고 고전적 미술을 고집했던 마네가 1863년 <올랭피아>라는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을 발표하면서 화풍을 변화하게 된 데에는 구 가지의 결정적 계기가 작용한다. 첫째는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다. 매춘부와 성행위, 시체와 죽음 등 추함과 악함에 대한 묘사로 가득찬 이 시집은 평소 보들레르를 깊이 존경하며 사상적 스승으로 여겼던 마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두번째는 일본에서 건너온 '우끼요에'라는 판화이다. 당시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일본의 도자기를 포장한 박스의 완충제로 함께 포장되어 들어온 종이 쪼가리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동안 원근법과 전통적 표현법을 고수했던 파리의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마네에게도 자신의 화풍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올랭피아>이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은 뒤이은 르누아르, 모네, 드가 등의 동료/후배 화가들로 이어져 서양미술사의 가장 강력한 사조 중의 하나인 인상주의가 그 화려한 막을 연다. 
 
인상주의라는 배가 신고전주의 파고를 헤치고 새로운 바다를 향해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장 자크 루소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크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원적 사고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으면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변화는 특히 예민한 감각을 지난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르네상스 미술의 뿌리를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는 계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마네가 인상주의라는 모더니즘호의 닻을 올린 화가라면, 그 모더니즘호의 첫 선장이 된 것은 바로 모네였다. 어릴때부터 인물 캐리커처를 즐겨했던 모네는 캐리커처를 그려서 모은 돈으로 파리 여행을 다녀올 만큼 꽤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게된 결정적 계기는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연을 맺으며 해변 풍경화를 주로 그리던 외젠 부댕(1824~1898년)과의 만남이었다. 모네는 그를 첫 스승으로 모시며 화가로서의 자신의 평생 주제를 '자연'으로 삼게 된다.
 

클로드 모네의 <루엘에서 본 풍경, 1858년>

 
당시 새로 개발된 튜브 물감을 들고 모네가 밖에 나가 그린 첫 그림은 바로 <루엘에서 본 풍경>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58년 르아브르 미술전에 출품된 작품으로서 스승인 부댕의 작품 2점과 함께 전시되어 큰 칭찬을 받기도 했다. 현재 이 작품은 일본인에 의해 개인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댕 다음으로 모네에게 영향을 크게 끼친 인물은 역시 마네였다.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의 두 작품으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마네를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리더로 추앙받기 충분했고, 이들은 바티뇰 거리에 있는 마네의 집에 하나둘씩 모여 새로운 미술에 대한 토론을 나누었는데, 모네도 그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모네는 '평면성과 단순성'이라는 코드를 전수받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 <생타드레스의 테라스>라는 그림이다.
 

모네의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186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모네가 1867년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위치한 휴양 도시 생타드레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동안 그린 그림으로서 1879년 제4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되었다가 196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 현재까지 소장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네가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빛'이다. 빛은 모네 인생의 주제 그 자체였다. 광학과 카메라의 등장으로 회화는 위기를 맞았지만, 모네는 오히려 빛이 있어야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카메라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면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비친 빛이며, 자연은 빛의 반사로 탄생한 무수한 색채 조각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생각의 끝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1872년에 제작된 <인상, 해돋이>라는 그림이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 1872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빛'에 대한 모네의 연구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1890~91년에 그린 건초더미 연작 시리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변하고 그것이 빛의 변화로 이어지며, 결국 빛이 변하면 풍경 속 만물과 색과 형태가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한 시간만큼 그곳의 풍경도 무한히 다채롭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의 풍경에 하나의 그림'만을 그리던 것과 전혀 다른 개념이었던 것이다.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시리즈, 1890~1891년>

 
189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건초더미 연작 시리즈는 마치 카메라를 한곳에 세워놓고 계절내내 연속 촬영한 것처럼 같은 주제를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각각의 그림은 모두 다른 색과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 시리즈는 총 25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난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이 중 하나의 작품이 1억 1070만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는 모네 작품 중 역대 최고가이기도 하며, 역대 소더비 경매 역사상 아홉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고 전해진다.